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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입니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7-07-28 (금) 09:28 조회 : 32
작성일 : 2017- 7- 30
작성자 : 김병규 목사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입니다.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내는 야심은 참으로 큽니다. 지치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습니다.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열매가 그들로 더 열심히 달리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사역도 사역이지만 그 사역의 성공으로 인해서 자신이 누리게 되는 삶의 수준과 질도 확연히 달라지는데요. 이런 저런 요소들이 살맛이 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비교적 바른 중심과 의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 경향은 굉장히 소극적입니다. 마음은 있지만 실제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잘못된 현상에 대한 날카롭고 정확한 분석은 내리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가 고착화되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게 됩니다. "저 인간은 입만 열면 누군가를 욕이나 하고 자기 신세 한탄밖에 하지 않는 것 같아" 이런 것들이 그 사람 안에 있는 복된 중심마저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찌질 거리는 삶의 태도와 자세를 지닌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그러면 왜?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들보다 의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사역자들이 더 소극적일 밖에 없는가?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이유를 무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역을 통해서 내 몫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령 야망과 열정에 사로잡힌 자들을 향한 비판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이들 역시 바른 소리와 비판을 통해서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었던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입니다. 예를 든다면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주면서 왜? 나는 알아주지 않느냐?" 이런 항변의 주인공이 이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솔직하게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방법론에 있어 열정주의자는 먹혀들어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고 의로운 주의자들은 대중성이 없는 것을 선택한 차이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다면 변명은 구차합니다.

이들 역시도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신앙의 선진들이 걸어간 길을 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이 찬송처럼 산다면, 그 사람의 사역은 지칠 이유가 없습니다. 갈등도 고민도 없이 가자는 말이 아니라 초라하고 비참해 보이는 작은 사역이라도 영혼을 담아 열심을 쏟아 붙자는 것입니다. 인간은 야심과 야망에서 출발한 열정보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힘과 능력이 더 강력함을 입증할 증인의 자리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 영혼을 쏟아 붓는 사람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사역은 없기 때문입니다. 
                   
              July, 23, 2017, 그때에 내가 거기 있었네, 김 병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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